행주치마가 행주대첩 전에도 있었다.
다음 이미지 발췌
1593년 2월 12일.
일본의 3만 대군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행주산성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조선군은 2,300 명뿐이었고 무기까지 동이 났다.
그때 성안에 살던 백성들이 나섰고 아낙들은 치마에 돌을 담아 날랐다.
이때 행주치마라는 말이 아낙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치마의 명칭에 행주의 지명을 따서 탄생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이야기는 사실인지 살펴본다.
임진왜란으로 조선을 침략한 일본에 맞서, 팔도 곳곳에서 싸운 조선군.
한양에서 약 8km 떨어진 행주산성이 있었다.
이곳에서도 권율 장군이 이끈 부대가 일본에 맞서 전투를 벌였다.
2~3,000명이라는 적은 인원으로 일본 30,000 대군에 대적해야 했던 전투였다.
행주대첩은 권율 장군을 중심으로 군인과 백성,
모두가 힘을 모았기에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던 위대한 전투였다.
그리고 행주대첩 때 탄생했다고 알려진 단어, 행주치마.
그런데 행주대첩보다 앞선 책에서 행주치마의 기록이 발견되었다.
행자의 의미는 <닦는 천> 무언가를 닦기 위한,
천으로 된 치마라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까 행주치마라는 단어는 행주대첩 이전부터 사용되고 있던 것이다.
힘을 모아 나라를 지킨 행주 백성의 활약은 모두에게
큰 감동으로 남았고 그 후부터 발음이 비슷한 행주치마를 보며
행주대첩의 승리를 떠올린 건 아닐까 유추해 본다.
백성의 애국심이 이뤄 낸 승리, 행주대첩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위대한 역사이다.
잊지 않고 NO JAPAN을 외치는 우리 국민들
끝없는 대립이 아니라 경쟁구도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