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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신이 세종대왕께 올린 간청

1with 2020. 2. 14. 01:00



놋그릇 제조 과정     다음 이미지 발췌





조선시대, 추석 명절을 앞둔 장터에서 가장 바빠지는 가게는

금색으로 빛나는 놋그릇을 파는 '유기전'이었다.


특히, 질 좋은 유기로 유명했던 안성지역의

유기전에는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그리고 '역시 안성에서 맞춘 유기가 최고'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안성에서 만든 질 좋은 유기에서 유래했다는 안성맞춤의 어원,

이 말속에는 우리가 모르고 있던 역사가 숨어 있다.


1440년, 어느 날 일본의 사신이 조선에 당도한다.

그는 조선의 왕, 세종에게 본국에서 가져온 토산물을 바치며

하나의 청을 올린다.


조선에서 만든 놋그릇, 유기를 달라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진 조선의 유기는 오래전부터

동아시아가 탐내던 명품,

조선의 왕실에서도 전국 유기 기술자들에게 세금 대신

유기’를 상납받아 사용해 왔다.

하지만 임진왜란 후, 나라의 혼란을 틈타 백성에게 과도한

세금을 걷는 탐관오리들이 늘어나게 되자 조선의 14대 왕에 오른

선조는 제도를 개선해 백성들의 고충을 덜어주도록 한다.


대신 왕실이나 관아에서 필요한 물건들은 필요한 만큼

구매해서 사용하도록 했다.

이때부터 유기 기술자가 많았던 안성지역에 주문이 몰려들었다.


특히, 미리 만들어 놓은 '장내기'보다 취향과 용도에 맞게

주문 제작하는 '모춤'그릇이 큰 인기를 얻게 됐고 안성의 모춤,

안성에서 주문해 만든 유기그릇의 유명세가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백성의 세금 부담을 줄여 주려 했던 선조의 선정.

안성맞춤은 백성을 위한 마음에서부터 탄생한 표현이었다.


수신사修信使
조선 왕조 말기에 일본에 파견한 외교 사절,

이전까지는 통신사라 하였는데 강화도 조약 이후 수신사로 개칭한 것이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뒤 일본은 계획된 절차에 초대 외교의 형식을 취하여

조선에게 사신을 파견해 줄 것을 간청하였으며

조선 정부로서도 회사의 뜻으로 사행을 결정하여 예조참의 김기수를 수신사로 파견하게 되었다.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  
조선에서 일본에 보내던 외교 사절,

조선 개국이래 일본에 대한 정책으로 교린정책交隣政策을 취하면서

일본은 특산물을 바치고 생활 필수품을 은사물恩賜物로 받아 가는

조공 무역朝貢貿易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조선은 주로 정치·외교상의 목적을 띤

통신사를 일본에 파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