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바흐 씨,
커피를 마시다 바라본 창 너머 두 개의 풍경이 낯설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봄과 겨울이 마주 본다.
키 큰 나무들이 수근군수군 헐벗은 손을 들고 있다.
저 나무들 이름이 뭐더라.
공중에 뜬 가시처럼 놀란 듯 새하얗게 서 있는 나무들,
바흐는 1685년 3월 21일에 태어나 1750년 7월 28일에
세상을 떠났다.
봄에 태어나 여름에 별이 되었다.
그의 별 주소는 소행성 1814번이다.
어린 시절 내게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음반을 선물한
남자 어른이 있었다.
파블로 카잘스의 모노 녹음이었는데 준 사람 이름을 잊었다.
그것도 엄마 집에서 장을 정리하다 발견했는데
얼굴도 성도 기억나지 않는다.
왜 이런 선물을 했을까?
기억나지 않는 사람도 있는가.
바흐가 빛나던 순간이 영화 <페드라>에 있었다.
젊은 계모와 사랑에 빠진 전처 아들이 아버지에게
들켜 죽어라 얻어 맞고 홧김에 가속 운전을 하다
절벽에 떨어져 죽는다는 내용이다.
그 아들 역을 맡은 앤서니 홉킨스가 운전 중 독백을
하며 듣던 음악이 바흐의 <Toccate And Fuga in Major>다.
그가 해안의 절벽을 달리며 큰 소리로 절규한다.
여긴 왜 왔지요?
아이들이나 돌볼 일이지 난 적어도 볼 일이 있어요.
아버지를 죽이려 했거든요.
이 장면에서 기분이 미묘했는데
그리스 비극의 아름다움을 생각한 게 아니라
바흐의 자식이 대체 몇 명이었기에 애 보라는
소리를 들을까 싶었다.
바흐으 자식은 스무 명이다.
첫 아내와 13년간의 결혼생활에 7명,
둘째 아내에게서 13명을 낳았다.
자식은 많이 낳는 게 아니다.
음악도 1000여 곡을 남겼다.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미친 듯이 일한 결과다.
성실한 바흐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