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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 벌레를 죽이고

1with 2022. 3. 2. 01:00

 

번질번질한 너의 등이 불길해서

유난히 빠른 민첩함이 불쾌해서

두리번 거리는 꼬락서니가 기분 나빠서

아악~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가며

너를 때려잡는다.

 

겁먹은 너는 바퀴의 신

엄청난 포텐셜 에너지로 도망간다.

내 숨겨진 야성도 불같이 일어나

날강도 쫓는 강력계 형사

들판에서 사슴 쫓는 표범도 눈엔 총기가 번쩍 온통 충만한 살기

 

살려고 악착같은 너보다

죽음의 사자인 내가 어찌나 우월한지

너보다 수백 수 천배 큰 몸집에서

뿜어 나오는 나의 괴력을 보아라.

 

슬리퍼를 던지고

동네 맛집 전단지 책으로 너를 후려치자

너는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늘을 보고 뒤집어져 소리 없는 함성

바퀴 살려~ 벌레 만세~

가늘게 발모가지를 떨며 죽어갔다.

 

참 개 같아라 벌레 인생

생명을 때려죽이고도 미안하지도 않고

눈곱만큼도 애도를 안 하다니

네가 그토록 흉측한 것이냐

인간인 내가 이토록 잔인한 것이냐

 

죽은 몸뚱이 치우는 것도 꺼림칙해 멍하니

서 있었다.

 

어쩌다가 바퀴벌레로 태어난 나와

나도 모르게 인간으로 태어난 내가 오늘 만나

죽이고 죽임을 당했구나

이 넓디넓은 세상 이 속절없는 세상에

너도 살고 나도 살 수는 없는 걸까

 

왜 죽여야 했는지

고개를 쳐드는 질문에 난 단호한 이유를 생각한다

왜 너는 그리 징그럽게 생겨야 했는지에 대해

네 눈에 보이는 인간이 어쩜 거대하고 흉측한 괴물인데

 

맞다 그래 우리 인간은 참 가지가지 많은 것을

죽이며 살아가는 괴물이다.

수많은 치킨집에선 오늘도 닭을 죽여 달고 짠 양념치킨을

만들고 소 돼지를 죽여 지글지글 굽고 삶고

벌레는 징그럽게 생겨서 죽이고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온통 죽이는 것 투성이구나.

 

벌레야 내게 죽임을 당한 바퀴벌레야

다음 생이 있다면 지구 아닌 다른 별로 가거라

죄다 때려잡는 나 같은 인간이 없는 별,

 

너의 긴 더듬이와 등딱지가 행운의 징조로 

여겨지는 곳 각자 무엇으로 살아가든 죽고 죽이지 않고

생명이라서 존중받는 별

 

너를 패 죽일 맛집 전단지가 없는 곳

아무리 멀어도 그런 별에서 태어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