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위해 기도한다
수년 전 이야기다.
어느 날 이른아침 나는 사무실의 대형회의실 앞을 지나다가 인기척을 느끼곤 회의실 문을 열어보았다.
뜻밖의 인물이 엎드려 기도하는듯 흐느끼고 있었다.
서로 가벼운 인사를 나눈데 이어 그 사람은 힘겹게 일어서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은 분노와 한이 맺힌 자신의 이야기였다.
그는 앞날이 유망한 해외유학파이고 유복한 집안의 자제였다.
늦은 나이지만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모친의 치맛바람에 의해 격에 맞는 여인과 결혼을 전제로 만남을 이루고 있었다.
맞선으로 진도가 빨랐다.
동료들도 곧 국수 먹겠거니 기대를 하고 있던차에 그는 파혼을 하였다.
원인은 모친이었다.
대치동에 40평대 아파트를 마련해서 예비며느리에게 최고급 가재도구로 채워넣으란 말에 여인의 형편상 어렵게 순응했다.
그러나 2차 예물이 오가는 가운데 모친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요청이었다.
롱 밍크코트 두 벌이 기본에 나머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여인의 집안은 부유하진 않지만 다복한 가정의 맏이로 자신의 수입을 알뜰하게 모아 결혼준비를 하는 참한 아가씨였다.
여자쪽에선 너무 심한 결혼 예물 요청에 파혼을 하게 되었고
남자는 마음의 병을 얻어 영혼은 쓴뿌리로 가득찬 사람이 되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부모님과 약혼자 사이에서 우유부단하고 무능한 자신을 발견하고 삶의 지표를 잃은 사람처럼 아파하고 있었다.
난 그를 앞에두고 작은 기도를 했다.
진정한 울림의 기도로 들렸나 보다.
기도를 마치자 그는 나를 바라보며 놀라운 말을 하였다.
<제게 이렇게 얘기해 주고 기도해 준 사람이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학식이 많은 그였지만 진솔한 사랑의 기도와 얘기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믿어지지 않았다. 따스한 얘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보육원이나 노인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존재함을 새삼 느꼈다.
따스함을 잊은채 살아가는 이웃이 바로 주위에 있음을 알게 된 얘기다.
우리는 잃어버린 자를 위하여 짐을 지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지어야 할 짐을 잃어버린 사람입니까?
내 기도뿐 아니라 이웃을 위한 작은 기도로 하루를 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