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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의 서재

1with 2019. 4. 12. 01:00



나는 책을 먹는다?  다음 이미지 발췌



친구와 선배의 집에 초대받아 갔다.

서재의 문을 열자, 순간 아찔함을 느꼈다.


뭔가 예상과 다른 현상이 벌어지면 사람은 순간적으로 마법을 느끼게 돈다는,

주술사에 관한 옛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주술사는 그런 마법의 순간을 손으로 움켜쥐는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다.

바로 이 순간, 나 자신이 그런 주술사처럼 느껴진다.

책에 둘러 쌓인 주술사.


넓은 방에 넘치는 책으로 터질 것만 같다.

창문 부분만 빼고 사면이 전부 책 천지다.

방 한가운데는 책상이 있다.

천장까지 빼곡히 쌓인 책은 얼핏 보면 무질서해 보이지만,

선반마다 가나다순으로 분류용 카드가 붙어있었다.

이 중 내가 읽어 본 책은 몇 권이나 될까.

<카르마조프의 형제, 멋진 신세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양철북, 데미안, 마의 산...>

읽어 본 책도 있지만, 제목 읽는 데만 하루 종일도 부족할 듯싶다.


책상 앞에 앉는다.

아주 오래전에 본 적이 있는 그런 책상이다.

면도칼 자국이 있고, 간간이 잉크 자국도 있다.


맨 위에 놓인 책을 펴 든다.

아라비안나이트,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이다.

책을 들어 펼쳐 본다.

굉장히 야한 묘사와 장면에 깜짝 놀란다.

이 책이 이런 책이었나?

노트에는 책에서 베낀 듯한 문장이 적혀있다.

글씨가 반듯하고 아주 어른스럽다.


<슬퍼하는 자에게 일러주어라.

슬픔은 언젠가 사라지고

즐거움에 끝이 있듯이

걱정도 이윽고 가버린다고>


책상 위에는 제임스 조이스, 로랭 가리, 쇼펜하우어의 책들이 있다.


어디선가 까치 우는 소리가 들린다.

선배가 식사하라고 부르는 소리에 우린 서재를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