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은 19세기 영국의 화가이자 장식가인 에드워드 번 존스(1833-1898)가
그린 <운명의 수레바퀴(1883)>이다.
번 존스는 라파엘 전파前派의 화가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중세와 고전주의 작품, 성서에 바탕을 둔 주제의식에서 영감을 받아 유려한 선묘線描와
단정한 구도, 화려한 색채로 신비적이고 낭만적인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으며,
장식적인 경향이 강했다.
라파엘 전파는 라파엘로 같은 르네상스 고전주의 대가들을 모방한 화풍에서 벗어나
르네상스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펼친 화가들의 집단이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는 거대한 수레바퀴를 지니고 있다.
그 수레바퀴의 테두리에는 수많은 인간의 운명이 붙어 있는데,
수레바퀴 꼭대기에 붙어있는 인간은 행운의 절정을 누리고 있고,
바닥쪽에 붙어있는 인간은 불운의 늪을 헤맨다고 한다.
하지만 포르투나가 심심하면 마음 내키는대로 수레바퀴를 돌릴 것이기 때문에
그 상태가 언제까지나 그대로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보였던 자가 급작스럽게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절망 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던 자의 운이 별안간에 트이기도 한다.
게다가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때가 언제일지도 미리 알 수 없다.
번 존스의 <운명의 수레바퀴>는 바로 이런 개념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번 존스는 이 그림과 관련해 지인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내 운명의 수레바퀴는 진실한 이미지라네. 우리의 차례가 오면, 우리는 그렇게
바퀴에 들러붙고 말지."
이 그림을 보면, 거대한 운명의 여신 앞에서 인간은 조그맣고 초라한 존재에 불과하다.
한 때 수레바퀴의 정점에서 왕관을 쓰고 왕의 지위를 누리던 자는
이제 다른 자에게 머리를 밟히며 추락하고 있으며,
그의 발 아래에는 월계관을 쓴 시인이 눈을 크게 뜨고 수레의 실체를 밝히려 하는
지성인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이야기는 운명의 변덕스러에 인간은 속수무책이라는 체념적인 이야기로 들리기도 하지만,
또 다르게 보면 최악의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말라는 긍정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인간지사 새옹지마 塞翁之馬라는 말이 있듯이 운명의 수레바퀴가 갑자기 위로 다시
올라갈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 그림은 현재 프랑스 파리 3대 미술관의 하나이며 인상파 화가들의 보물창고로 불리는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雨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