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이 있으면 좋겠어
내가 읽은 책 중 어느 것 하나 읽은 게 없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몰라도 돼.
고상한 음악 취향이 아니라서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구별 못하고
사회 경제 문화 정치 뭐하나
똑 부러지게 아는 것 없이 히죽히죽 뒤통수만 긁어도 괜찮아.
못 생겨도 좋아.
키는 똥자루보다 약간 크고
눈은 새우젓만 하고
얼굴은 울퉁불퉁 고구마를 닮아도 괜찮아.
덜 영리하고 덜 영악해서 내가 하는
거짓 엄살에 물기가 맺히는 눈,
내 발이 아플까 봐 업히라며 내주는 넓은 등
내가 잘 먹는 반찬은 내 쪽으로 밀어주는 투박한 손
헤어질 땐 안 보일 때까지 내 뒷모습을 지키는 끈적이는 두 발,
이런 것들을 가진 애인이면 좋겠어.
옛날엔 나보다 더 유식하고 아는 게 많아서
아 하면 어 하고
하나를 말하면 열을 줄줄 쏟는 사람이 좋았어.
내가 본 영화,
내가 아는 음악,
내가 읽은 책을 더 깊이 아는 사람,
옷맵시도 말솜씨도 세련되고
그렇게 나눌게 많은 애인과
수줍게 손잡고 끝나지 않은 길을 걷고 싶었어.
하지만 거짓 아닌 내 진실도 믿어주지 않고
다른 이를 업을 용기 없는 등
내 밥 네 밥 각자 숟가락질에 바쁜 손
쿨하게 헤어지고 손 흔들며
뒤돌아가기 바쁜 두 발을 가졌다면 무슨 소용이야.
내겐 애인이 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