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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영, 식민지 트라우마

1with 2022. 8. 4. 01:00

 

 

100년 전 조선의 천재였던 

춘원 이광수는 

양복 차림의 시체적 위장으로 식민지 시민의

열등감이 해결되지 않자 언어적 위장을 했다.

 

이광수는 상해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영자신문을 사서 광고만 훑어보고는

영자지를 주머니 밖으로 반쯤 나오게 찔러 넣는다.

 

모던 걸, 모던 보이는 양복을 입고

영어책을 들고 다니는 것이 당시의 첨단 패션이었기 때문이다.

 

모던 여학생에게는 외국어 중에서도 프랑스어를 섞어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할 정도였다.

 

외국어는 조선인에게 근대인이 되는 표지였다.

 

외국어는 실제 외국인과의 소통이나

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미개한(?) 조선인과의 분리를 위한 도구라고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영자신문을 주머니에 꽂고 영어책을 보이게

들고 다니고 외국어를 조금 섞어서 말을 하는 게 유행이었다.

 

조선인이 제 말을 알아듣지 못할수록 조선인과 분리되었다.

 

유선영, <식민지 트라우마> 참조

 

이처럼 외국어 섞어 쓰기는 변방의 자국민과 분리되어

세계의 중심인 서구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은

욕망이 만들어 낸 언어 습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