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는 성리학의 목적 가운데 하나인 '수양'의 대상이었습니다.
차나무는 조선 선비들에게
'자신을 위하는 일이 곧 천하를 위하는 일임을 깨닫고 실천하는 자세'를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조선 선비들의 공간에서 차나무를 만나는 것은
단순히 한 그루의 나무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선비정신을 마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은 함양에서 관직생활을 하던 시절에
차나무를 잔뜩 심은 차밭을 조성해
백성들이 겪던 차茶 세금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김종직은 차나무를 통해 다도茶道를 실천했던 것입니다.
또한 차나무는 뿌리를 직각으로 땅에 내리기에 옮겨 심는 것을 꺼립니다.
조선 선비들은 이 모습을 보며 '강직함'을 배웠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딸을 출가시킬 때 부모가 차씨를 주었는데,
차나무의 강직함을 닮아 시댁에 가서 잘살기를 바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