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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어느 남자 이야기

1with 2017. 12. 14. 09:15





한 해의 마지막을 치닫고 있던 어느 날,

명동에서 친구 녀석에게 바람맞고 눈앞에 보이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그 백화점은 쇼핑은 하지 않더라도 서울시민들의 나들이 장소로 각광을 받았다.

포도 줄기 그림을 꽉 채운 쇼핑백 하나가 나를 중산층으로 만들어 주던 때다.

1층에 들어서니 휘황찬란한 불빛아래 상냥한 점원들, 넘치는 물건들 속에 인파로

정신이 없었다. 왼쪽으로 보이는 널찍한 계단으로 몸을 옮겼다.

출출한 시간인지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맛있는 냄새에 이끌렸나?

주머니엔 딱히 쓸만한 지폐도 없었다. 그래도 발이 이끄는 방향으로 몸을 맡겼다.

100미터 미인인가? 멀찍이 아르바이트하는 여대생을 보곤 그녀를 몰래 주시하기 시작했다.

1시간여 그리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덧 그녀가 주변 동료들의 손짓으로 나를 발견한 듯 했다.

순간 눈이 마주쳤다. 짜릿함이 교환된 것은 나만의 착각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지하 식품점에서 대학생 아르바이트란 명찰을 달고 무척이나 밝은 인상으로

오고 가는 인파들 사이에 하얀 꽃봉오리처럼 빛이 났다. 그녀는 나의 S극을 자극하는지

내 몸이 내 말을 듣지않고 그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 앞이다.

무슨 말을 할지 망설임도 없이 내 입술이 누군가에게 무선조종 당하는 느낌이었다.

<언제 끝나죠?>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6시쯤 마칩니다.> 내 입술은 총알처럼

쏟아낸다.<밖에서 기다릴테니 따뜻한 커피 한 잔 하죠?>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조금의 거리를 두고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주머니 판매원들이 자기들끼리 뭐라고

귓속말을 하며 나를 힐긋거린다. 그 모습 또한 싫지 않았다. 시간이 되어 백화점 정문 앞으로

향했다. 잠시 시간이 흘러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는 두리번 거림도 없이 앞을 향한다.

거리의 인파를 헤치며 놓치지 않으려 그녀의 팔짱을 꼈다. 잠시 놀란 듯 움찔하였지만,

그녀도 내 팔짱이 싫지 않았나 보다. 잠시 후 몸을 비틀며 살그머니 팔장을 푼다.

우린 예전부터 아는 사이처럼 말없이 길을 건너 눈에 먼저 띄는 커피숍을 들어갔다.

분위기는 바 수준으로 내 두터운 피부를 감춰줄 조명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를 옆에 두고 난 맥심커피를 시킨 후 호구조사 들어갔다.

내가 원하던, 꿈에 그리던 그녀의 생활환경은 나를 블랙홀로 초대하는 듯 했다.

빨려 들어가며 그녀의 눈을 잠시 응시했다. 이제야 세상을 향해 호흡 시작하는 한 마리

송아지마냥 비췄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나 남자인데..어떻게 하나?

숱한 여인들을 만났지만 한 번도 뜨거운 가슴을 만나지 않아서일까? 초경하는 소녀처럼

변한 나를 발견했다. 손목에 이종사촌형이 쓰다 물려 준 오래된 가죽줄의 납작한 스위스

시계는 8시를 향해 있었다. 아마 이 친구는 지금쯤 일어나겠지? 아니다 다를까 그녀는

연신 시계를 보더니 이내 일어나 가겠단다. 전화번호도 못 알아놨는데...그래도 집 방향은

같았다. 거의 같은 동네여서 마음만 먹으면 일주일이면 그녀를 찾을 수 있겠지라며

그녀를 내 울타리에서 풀어줬다. 함께한 버스 안에서의 작은 스침도, 흔들리며 샴푸냄새가

나를 극적으로 자극한다. 우린 기약 없이 그렇게 헤어졌다.

 

나는 겨울을 좋아한다.

유난히 땀이 많아 아침저녁 샤워로는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방학이라 이종사촌형이 하는 이대 앞 커피숍으로 향했다.

거리에는 캐롤송과 인파들로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지만

커피숍만은 인기척이 전무한 무덤 같았다.

주방의 김씨 형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종이학>이란 노래를 들으며 혼자 연신 콧노래를

부르고 있고 난 난로가 어두운 조명 아래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 커피숍 문에 달린 신주종이 땡그랑 소리를 내며 인기척이 났다.

오늘 첫 손님이다.

잠시 후 여인 둘이 머뭇거리며 <들어가도 되나요?> 라며 묻는다. 아마 실내에 손님이 없어

영업하는지를 물어보나 보다. 들어오라는 말에 두 사람은 난로불 가까이 왔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삼일 전 버스에서 헤어진 그 대학생을 여기서 예기치 않게 재회하게 되었다.

옆의 친구는 후배인양 연신 언니란 호칭을 달고 얘기한다.

서로가 너무 놀라 할 말을 잊었지만, 얘기에 기름을 바른듯 술술 풀린다.

우린 그런 과정을 겪으며 운명이란 단어를 앞에 두고 가까워졌다.

주방의 김씨 형도 오랜만의 여자 손님이 반가웠는지 푸짐한 먹거리 서비스를 가져다 준다.

이 겨울이 그리 춥진 않을 것 같다.

아버지와 어머님 같은 학교에서 교편생활 하시며 만나 그 시절 흔치않은 연애결혼을

하신 분들이다. 부모님 두 분이 일본에서 유학하고 오신 터라 늦은 결혼으로 나를

첫 아들로 보시고 2년 터울로 동생을 보셨다.

아버진 그림을 그리셨고, 이중섭과 같은 느낌의 외모와 생활도 단명까지도 그러하셨다.

어머닌 영어를 전공하셨는데 학교에선 국어를 가르치셨다. 어떤 영문인지 잘 모르겠다.

아버지의 방탕한 생활로 가세는 날로 기울었다. 채권자들이 매일 못살게 굴어 어머닌

교편생활까지 하실 수 없게 되었다. 나중엔 집까지 차압당해 남은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다.

아버진 46세의 짧은 일기로 폐암 선고 후 채 1년을 못사시고 가셨다.

어머닌 영주에 위치한 절에 기거하셨고, 동생은 사촌 집에 있다가 사고치고 고시원에서

생활했다. 이모부님이 당대 유명한 국회의원이시라 넉넉한 살림을 믿고 난 그곳에서

눈치밥 먹으며 청소년기를 보내게 되었다.

이모부님 내외는 정이 별로 없으셔서 내가 어떻게 생활하는지에 관해 관심도 없었고 따뜻한

말씀도 없으셨다. 그러나 사촌동생들의 공부는 내가 그 집에 기숙하는 비용 삼아 돌봐 주었다.

큰형은 요즘으로 해석하자면 강남 7왕자처럼 생활했다. 잘난 인물과 넘치는 재력을 과시하며

방탕한 생활의 끝자락을 보여주었다.

형의 방탕한 생활 덕(?)에 난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용돈벌이 정도 했다.

학비가 없어 대학을 6년이나 다녔고 대학원을 4년간이나 다니게 되었다.

우리 집안의 저주 때문인가? 나도 이른 아침부터 소주를 마시지 않으면 하루를 시작

할 수 없을 지경이다. 가끔 만나는 동생은 이태원에서 주먹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을때다.

어느 날 동생은, 자신보다 6살이나 위인 여자를 데리고 나와 소개를 시킨다.

배는 이미 남산만 하다. 처음 보는 그 여자는 나를 아주버님이라 호칭한다.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연신 담배만 피워 물었다.

동생은 이전에도 수 많은 여자를 만나온 것을 안다. 결혼 할 모양이다.

난 동생과 둘이 밖으로 나와서 잠시 얘기를 주고받곤 헤어졌다.

동생은 형 밥이나 먹고 다녀하며 주머니에 돈을 넣어준다.

찔러주는 돈은 언제나 수표 몇 장이다.


그 날은 친구들을 불러내어 밤새도록 마시는 날이었다.

사물이 서너 개로 보이는데 처음 보는듯한 전구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기를 느껴 옆을 보니 낯모르는 여인이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어있고 화장은 호러물에나

나올 법한 모양으로 번져 구역질나게 구겨 잠들어 있다.

살그머니 밖을 빠져나와 아침의 찬 공기로 샤워를 하곤 집을 향해 갔다.

아침부터 친구 성욱이가 연락이 왔다. 크리스마스도 함께 못했다며 본가인 김천에 오란다.

자신의 약혼녀도 온다니 나더러 데리고 올 수 있는 여자 친구 있는지를 물어본다.

아무리 손가락을 이리 세고 저리 세어 봐도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모두 거리의 여자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제약도 받기 싫기에 하루하루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이다.


, 그 친구가 생각났다. 백화점 아르바이트도 끝나서 아이들 과외를 하는 모양이다.

1, 시간을 맞춰서 과외집 근처로 갔다. 그녀는 느닷없는 내 출연으로 몹시 놀라며 반가워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현란함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친구이다.

우린 눈인사와 함박웃음이 오갔다. 차가운 바람 사이로 우린 온기를 나누며 거리를 걸었다.

오후 기차를 타기위해 여러 얘기를 나눴다. 그녀는 집으로 전화를 하는 모양이다.

빨간 전화통을 붙잡고 연신 얼굴을 숙였다 올려 봤다하며 전화기 저 쪽을 향해 설득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기차를 타고 김천을 향했다. 차창에 비춰진 우리 둘의 모습은 신혼

여행 떠나는 부부의 모습이었다. 처음이다. 여자로 부터 느끼는 이런 포근한 감정...

언제까지 가능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녀의 손이 작은 떨림을 전해져 온다.

누구에게도 깊은 온전한 사랑을 시도해 본적도 없지만 이 여자는 나에게 인생을 건듯한

사슴처럼 나에게 기대어 있다. 기차는 어둠을 뚫고 말없이 김천을 향해 달리고 있다.

성욱이는 기차역으로 자기 여자 친구와 우리를 마중 나왔다. 함께 국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직지사를 향했다. 80년 초 대학원생이 승용차를 가지고 다니는 친구는 거의 없다.

성욱이는 김천에 잘 나가는 연탄공장지주의 외아들이다. 그는 평소에는 돈을 잘 쓰지

않지만 나에겐 유난히 형 노릇하며 모든 것을 해결한다. 마음과 마음이 섞인 비빔밥이다.

직지사를 오르며 군밤을 두 봉지 사서 커플들끼리 까먹으며 올랐다. 둘레가 수 십 년은 됨직한

나무들로 도열 받는 기분이었다. 가파른 길을 접하곤 경내로 들어섰다.

내 가장 친한 친구중 하나와 그 약혼녀, 그리고 나의 새로운 여자친구...세상이 여기서

끝나도 좋을 것 같다.

공기도 맑고 마음도 평온하다. 경내의 잘 가꾼 나무들이 운치를 더했다.

내려와서 성욱은 토끼고기 잘하는 집으로 안내했다. 여자 친구들에게 처녀는 토끼고기 먹으면

안된다는 짓궂은 얘기를 하며 식사를 했다. 성욱이는 수려하게 잘생겼으며 나에겐 형 같은

존재다.

하룻 밤 묵으란 성욱의 말에 여자 친구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쉬워하는 성욱이를

뒤로하고 우린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서울의 밤은 화려함과 무언의 압박이 존재한다.

늦은 밤 그녀를 집에다 바래다주곤 난 커피숍을 향했다.

내 한 육신 가장 편하게 잘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혼자인 밤이 싫어 안주 없는 소주 한 병을 마시며 잠을 청한다.

나에게 내일이 올까? 난 아버지만큼만 살다 갈 것이다.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밀고 연애했다.

상처도 받고 주고, 미안하기도 한 사랑 놀음..

그러한 하루하루가 더해져 갈 뿐이었다. 절박한 상황이었지만 요동을 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삶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미래를 본다는 것은 호사였다.

내 인생은 혼란과 소요가 끊이질 않는 삶이다. 내 인생을 개척하기보다 도움 받는 것이

훨씬 쉬웠고 설사 성공한다한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막연하기도 했다.

남들보다 열악한 환경이 나를 통째로 지배하고 있었다.

그 괴로움에서 빠져나오려 담배와 술과 여자를 가까이 뒀다.

내 인생엔 두 여자가 있다. 첫사랑은 아르바이트생인 윤경이, 그리고 아내다.

윤경이의 결혼을 끝으로 정면에서 볼 수가 없었다. 이전보다 더 잦은 술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뒷길, 작은 카페가 하나 있다. 출판사에 원고를 건네주곤

자그마한 그 카페에 혼자 양주를 비웠다.

모는 조용하게 미소 지으며 내 옆에서 누나처럼

지켜봐줬다. 매일 문지방이 닳도록 카페를 드나들다

<저 주모는 내가 구제해 주지 않으면 결혼 못하겠지>란 마음이 들었다.

내 나이 서른 다섯이다.

아내 될 사람도 우연인지 첫사랑인 윤경이와 동갑이었다.

우린 결혼식이란 것도 생략한 채 살림을 합쳤다.

첫 딸이 태어나고 그나마 연구소 생활로 안정적인 삶이 이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나의 술로 인해 아내는 매일 눈물로 지새운다.

신파극을 하는 것도 아니고 살다보니 섬뜩한 부분도 있다.

내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울음을 시작하는 듯 했다.

그것도 구석에 앉아서 우는 울음이었다.

어쩌면 아내의 음모론적 행동으로 살림을 합친 것은 아닌지 잠시 머리가 멈춘다.

순옥이는 내 곁을 그렇게 꾸준히 지키는 한사람이 되었다. 순옥이는 아내의 본명이다.

난 하루 움직이고 사라질 인생처럼 살았다. 이미 끝까지 다 왔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추락할 일만 남았다.

아내는 자신의 과거로 인해 가족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며 내 곁을 지켰다.

인생의 숙성과정을 남들보다 과도하게 겪었음에도 내 위치는 암흑만이 남아있다.

관리하지 않은 다이어트가 요요현상을 부르듯 인생은 실패를 향해 멈춤없는 질주가 시작된

것이다. 겁나는 달리기가 시작된 것이다.

윤경이는 늘 톡톡 튀는 활기로 날 맞이해 주었다. 때론 기품 있는 여인의 향기가 나기도

했다.

오래된 친구처럼 늘 그 자리를 지키며 반겨 주었기에 우리의 이별은 가슴에 커다란 웅덩이

되어 가슴 아리게 했다. 그녀는 얘기를 할 때면,

내 말을 더 잘 들으려 커다란 눈망울로 응시하며 몸을 앞으로 기울렸다.

그녀의 그런 태도에 매료되었다. 따뜻한 마음, 친근함 그리고

정성 모두 연결되어 그녀가 되었다.

한편으론 차가운 열정과 절제된 인상도 숨어있었다.

그녀와의 헤어짐에 그녀의 마음을 구석구석 누리지 못해 아쉬움과 절심함이 상대적으로

커졌다.

그녀의 모친은 유난히 다정다감 하셨다.

날 사위처럼 반겨주셨고, 언제나 손을 꼬옥 잡아주셨다.

나의 어머니보다 더욱 엄마 같은 분이셨다. 심하게 취해서 택시를 타고 집 앞에 도착하노라면

택시비 건네 줄 가족이 없어 기사와 실랑이 하다간 파출소로 끌려가는 것이 허다했다.

술이 깨면 낯 뜨거운 사실이었지만 시간 개의치 않고 윤경이 집에 전화를 했다.

그때마다 그녀의 어머닌 택시비와 경찰에게 줄 음료수박스를 들고 오셔서 내 엄마마냥 뒷감당을 하셨다.

그리곤 다른 택시를 잡아 나를 태워 보내셨던 분이었다. 그 분의 딸이 윤경이었다.

다음 날 당연히 걸려올 것 같았던 전화는 없다. 일 주일여 지난 다음 난 그녀 학교 앞으로

가서 기다리곤 했다.

대학원생이며 조교로 일하던 그녀 앞에 허름한 차림의 내가 모성애를

자극하는 인간이었나 보다. 그녀는 황급히 마무리하고 내 손을 잡아끌고 따끈한 국밥을 사 주곤 했다.

그리곤 의도적으로 밝게 웃어 보였다. 무언의 시위를 하고 있는 듯 했다.

은유적 몸놀림이 나를 더욱 자극시킨다.

 

4년에 걸친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늦깎이 입대를 하게 되었다. 논산 훈련소를 거치고

삼척에 위치한 23사단 철벽부대에 배치 받았다. 호젓하긴 하지만 가족이나 친구들

면회가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시외버스 두 번, 시내버스 두 번, 하루에 몇 번 안 되는

운행시간을 맞추려면 오가는데 꼬박 하루다. 어머니와 동생에겐 단 한 번만 면회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이것저것 보따리에 한아름 싸서 오셨다. 어머닌 원래 말씀을 아끼는 분이시라

별 말씀 않으시고 뒤돌아 앉아 우시기만 한다. 동생은 오히려 형 노릇한다. 나보다 먼저

입대와 제대를 한 까닭일까? 거친 사회를 먼저 만난 까닭일까? 어린 시절부터 친척 분들은

우리 형제를 두고 난 교수를 되라 하셨고, 동생은 장사를 하면 크게 될 것이라며 갑론을박

하셨다. 이처럼 한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성향은 180도 달랐다.

그러나 뚜렷한 대화는 없지만 동생과는 진한 대화를 나눈 듯하다.

어머니와 동생의 면회는 그렇게 끝났다.


윤경에게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편지와 작은 소포가 배달된다.

오늘도 그녀의 눈물 배인 편지지를 읽는다. 흐느낌이 녹아있음을 안다. 또박또박 눌러쓴

편지가 그동안의 그리움의 흔적인지 나를 울린다. 겨울 입대라 진한 그리움은 겹겹이 입은

군복 속까지 파고든다. 그럴수록 나이를 잊고 불침번은 자청하곤 했다. 외로움을 날리려,

세상의 무게감을 지우려, 자신의 무능함을 회피하려 하늘을 보지만 지워지지 않고 별처럼

더욱 또렷해진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도 보통사람들처럼 살 수 있을까? 의문투성이만 남기고 허연 해만 떠오른다.

술 한 잔이 그립다.


일병 막내일 때 RCT 작전범위가 넓어서 무척 힘들었다. 군장의 무게는 기본이 18킬로인데,

나이와 관계없이 군에선 막내라 추가분량이 있어 넣다보니 22킬로를 육박했다.

그 무게감 때문인지 혹한기 일 주일 행군으로 낙오자가 점차 늘어났다.

중대장은 누구누구 낙오 되었는지 계속 통보하고 있었다. 100명중 36명이 남았다.

살을 애는 추위로 온몸은 감각이 없어진지 오래다.

발은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이고 땅은 지나갈 뿐이다. 머리가 멍해지고 쓰러질 것 같은

상황에 부대가 뿌옇게 보인다. 허리 통증에 발은 감각이 전혀없다.

그렇게 훈련은 끝나고 군장을 풀고 막사에서 휴식을 취한다. 허리를 펴니 우두둑 소리가

난다. 늦은 입대의 벌이 이것인가 보다.


유난히 매서운 바람이 많이 불던 어느 날, 하얀 털모자에 세트 목도리를 한 윤경이가

친구와 함께 면회를 왔다. 눈송이처럼 뽀얀 그녀의 모습에 눈물이 와락 앞을 가린다.

소녀 모습이었다가 때론 숙녀로 돌변하는 그녀가 얄미울 정도로 예쁘다.

그녀 품에 안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시간은 10시를 훌쩍 넘었다. 함께 한 친구는 전에도 본 적이 있기에

편하게 대했다. 친구는 우리에게 잠시도 틈을 주지 않는다.

돈이 귀한 시절이라 방을 하나만 빌려 별 말없이 앉아서 졸다 보니 동이 튼다.

이렇게 보내야 하나? 윤경이는 혼자 올 것이지, 친구를 왜 데리고 왔을까 잠시 원망스러웠다.

함께한 시간은 불과 18시간, 절절한 안타까움만 내 속에서 멈춰있다.

감정들이 밖을 나와 윤경이에게 알려줘야 하는데 깊숙이 박혀 요동도 없다.

그렇지. 그동안 답장 한 번 시원하게 한 적이 없었지. 그녀의 원망 섞인 눈초리에 애써

몸을 돌려본다. 그래도 등은 따갑다.

미안함이 있었지만 언제까지 날 기다리라고 용기 있는 말을 못하고 있었다.

사랑스런 그녀에게 내가 짐이 되긴 싫다. 먼발치에서 바라만 봐도 좋을 사람이다.

내가 무슨 복이 있어 정상적인 여인을 아내로 맞을 수 있나?

정녕 그것이 사실이어도 감당이 어렵다.

그렇게 윤경이를 떠다밀듯 보내고 더 이상의 편지 답장을 자제했다.

그녀도 고통을 감내하는지 몇 번의 편지이후엔 잦아들었다.

내 아픔을, 내 고통을 누가 알까? 30개월의 복무기간이 짧기만 하다.

국방부 시계는 마음대로라지만 연장은 불가능한가? 사회에 안착하기가 겁이 난다.


결손가정의 내가, 집도 가족도 없이 떠돌이 생활 하던 내가, 어떻게 정상가정을 욕심

낼 수 있나? 전역은 내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시간이 흘러 885월에 전역하게 되었다.

전역을 해도 몸 하나 눕힐 곳이 없었다. 한 달 집세 낼만한 돈도 없었다.

동생이 결혼을 먼저하고 조카까지 생겼다. 안면몰수하고 동생 집에 들어갔다.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수의 눈치도 보이고 해서 이른 아침 집을 나서고 늦은 밤잠만 청하게 되었다.

대학원 논문도 통과되고 졸업을 하며 교수님의 적극적 추천으로 모연구원에 입사하게

되었다. 정식직원은 아니지만 일 년 인턴을 거치면 정식연구원 발령을 받을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내 업무가 초중고 일선교사들의 모니터링이었다.

그들을 만나 인터뷰와 설문조사가 일차적인 것이라 잦은 만남이 이어졌다.

적은 월급이지만 그동안 친구들에게 빚진 술도 살 수 있었다.

학교 앞에 깔아 놓은 빚은 동생이 가끔 가서 갚곤 했다.

학부부터 있던 나의 외상장부는 아직도 존재한다.

밥 한 끼보다 소주 한 잔이 더 땡기는 나였다. 밝은 태양을 용기 있게 쳐다 볼 수가 없다.

자신감 결여인지 모르겠다.


아버지도 45세에 절명하셨다. 아마 나도 아버지처럼 짧은 생을 살지 않을까 생각된다.

술자리에선 의례히 50세까지만 산다고 얘기한다. 친구들도 동료들도 웃어넘긴다.

불확실한 매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80년대 서울의 거리는 그리 밝지 않았다.

특히나 겨울은 더더욱 그러하였다.

 

나는 저녁도 거른 채 안암동에 위치한 작은 절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버지 위패位牌를 모신 곳이다. 을씨년스런 날씨에 차가움이 뼈를 뚫고 들어온다.

윤경이를 잡지 못하고 다른 이에게 시집가는 것을 본지라 오늘만큼은 자신의 원론을 찾고

싶었나 보다. 앞에 합장하고 섰지만 먼 길을 와서일까 눈물도 흐느낌도 생기지 않는다.

아버지라 부르고 싶어도 입에선 윤경이 이름만 맴돈다. 사람들은 선오를 독종이라 하지만

이 날의 선오는 길 잃은 아이마냥 가여워 보일 뿐이다. 그리곤 어깨의 들썩거림만 이어진다.

얼마나 그렇게 엎드려 있었을까? 스님의 따스한 손이 선오의 어깨에 온기가 전해진다.

이내 선오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어나 합장하며 절을 나왔다.

 

차가움을 뚫고 거리를 나와 불빛이 번지는 주점의 미닫이를 드르륵 연다. 당연히 혼자다.

선오는 혼자도 여럿이 함께하듯 즐거이 술잔을 채우며 목을 축인다.

하루 종일 곡기를 구경해보지 못한 터라 소주 한잔을 넘겼는데 싸함은 목 줄기를 타고 내장을

휘감는다. 취기 어린 목소리로 주모와 농 섞인 얘기를 주고받는다.

주모도 선오의 모습이 싫지 않은 듯 여우 눈을 하고 엉덩이를 옆자리로 털썩 걸친다.

구석 테이블의 남자가 선오 쪽을 흘깃 거린다. 선오는 담배만 한 모금 힘차게 빨아본다.

라디오에선 <희나리>란 노래가 흘러나온다.


다니는 연구소에서 등산을 간단다. 정해진 시간에 설악산을 향해 버스에 몸을 싣고 동료와

이웃하며 몇 시간을 달려 내설악입구에 도착했다. 산행 점호 후 물품을 지급받고 주의 사항과

코스에 대한 안내를 받고 가까운 동료들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설악산 서북능선의 종점 안산에서 발원한 12선녀탕계곡은 그 길이가 12km에 달한다고 한다.

빨갛고 파랗게 채색된 깊은 가을을 알리는 나무들이 인사를 한다.

선녀탕에서 기를 받고 또 빼앗긴다. 얘기가 분분한 가운데 계곡의 깊은 물속을 보니 열 길은

되어 보이는데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다. 자리를 옮기니 다듬어진 암반 위로 미끄러지듯

흘러내리는 물과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짙은 옥색의 소, 때로는 바위를 타고 때로는

구름다리를 건너며 계곡 속으로 들어갈수록 줄줄이 이어지는 담과 소와 폭포, 그리고 쭉쭉

뻗은 적송과 깎아지른 암벽의 절경을, 더 이상 가난한 언어로 말을 만들기가 민망했다.

한찬석이 펴낸 <설악산탐승인도지>에서 이르기를 <12선녀탕의 절경을 빼놓고는 설악의

산수를 논하지 말라>고 못을 박았다고 한다.

 

중간에 가져온 도시락과 막걸리가 배낭에서 쏟아져 나온다. 오랜만에 등산한지라 시장기에

어정쩡하게 뱃속을 채운다. 사람들은 물가에 발을 담그고 소리를 지른다. 선오는 그 작은

열정도 뿜어낼 수 없다. 자신의 여자라 생각한 윤경이가 곁에 없어서이다. 상실감이 생긴 지 오래다.

동료들의 왁자지껄한 소음에 정신을 차리니 어느덧 해가 내설악 주봉을 넘고 있었다.

하루를 소비한 등산도 깊은 한숨을 잠재우지 못한다. 가슴속 응어리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숙제를 끌어안고 하산하였다.

 

선오는 오늘도 차가운 술 한 잔에 몸을 맡기고 싶지만 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몇 년 만에 휴대폰을 타고 이어지는 윤경의 음성인가?

먼저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그 전에 몇 번 우연을 가장한 만남은 있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만나자고 한 적은 없다.

그러나 난 이미 폐에 원치 않는 녀석을 끓어 안고 있는 몸이기에

머리숱도 많이 빠지고 몰골이 말이 아니다. 어떻게 만날 것인가.

헛웃음만 난다. 윤경이가 내 병마를 어떻게 알았을까?

물론 나의 절친 승균이를 통해 이야기는 접하고 있을 것이다.

윤경이와 승균이 여동생이 중학교 동창이니까.

그러나 친한 사이는 아니라서 알 수 있는지 궁금하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나 싶다.

아내는 할 줄 아는 일도 없다. 내 병원비는 동생인 선묵이가 해준다 하더라도 아이들 학비며 생활비며 막막하다.

앞으로 얼마를 살 수 있을까.

일산에 위치한 병원에 눈만 뜨고 누워있다.

아침에도 먹은 약이 속을 후빈다.

토악질을 하곤 먹은 약까지 뱉어낸다.

옆에 세워진 기계가 빽빽거리고 울면 이내 간호사들의 빠른 발놀림과 담당 의사들의 잦은

방문이 이어져 불쾌해져 온다.

아내는 거울까지 뺏어간다.

머리를 훓어 보면 머리카락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동생 친구가 병원 부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어 덕을 본다며 동생은 한사코 염려 말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더 미안해지고 낯부끄러워진다.

잠이 온다. 간호사들이 또 몰핀을 준 모양이다.

침대 주변에서 흐느낌과 웅성거림만 들려오는데 눈은 자꾸 감긴다.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났다.


얼마를 잤는지 모르지만 해는 중천이고 아내가 옷을 바꿔 입은 것 보니 어제 오후부터 줄곧 잤나보다.

잠시 후 제수씨와 어느 한 여자가 병실로 들어오더니 제수씨가 '여기'라며 안내한다.

윤경이다.

내가 그리 그리워하던 윤경이가 내 앞에 울면서 서 있다.

손을 내밀며 어렵게 잡아본다. 따스한 기운이 느껴진다.

얼마 만에 만져보는 손인가. 대학후배라고 먼저 윤경이가 아내와 제수씨께 인사한다.

세 여자가 함께 슬피 운다. 울음 속 주인공이 나인가보다.

가장 섧게 우는 여자가 윤경이다.

아내는 지친 울음이다. 내가 여러 사람들을 울리고 있다.

어머니도 수시로 우시고, 동생 선묵이도 보이지 않게 울음을 삼킨다.

윤경이를 보며 곧 퇴원할거라고 016 내 휴대폰 번호 꼭 받으라며 이른다.

가슴이 아리어 온다.

그리고 몇 주 지났다.

자주 잔다.

무슨 약을 주길래 통증도 없고 잠만 쏟아진다.

하늘도 보이고 그리운 사람들 얼굴이 서열 하듯 일렬종대로 서 있다.

그리고 편안해진다. 난 깊은 잠 속으로 미끄러진다.

다들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