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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1with 2018. 1. 18. 19:36





현대인이 갖추어야 할 다섯가지 요건
필수사항으로 알고 자라왔다.
 
어린시절 친구들 영어단어 암기할때, 난 회화가 필수였고,
남들 타자기 구경하던 시절, 난 컴퓨터의 DOS 부터 배웠고,
고음불가인 나를 피아노와 플룻을 강제로 가르치셨다.
남들 놀때 뒤쳐지지 말라고 사교댄스를 직접 가르치셨고,
스포츠는 건강한 정신을 만드는 근원이라 이르시며
거의 모든 스포츠를 앞세워 배우도록 하셨다.
 
아버지가 영어전공하셨고, 한 때 고등학교 영어교사셨다.
하교후 집에 도착할 즈음 집으로 전화해서 녹음기를 틀어놓게
하셔서 내가 듣게끔 하는 철저한 귀신 같은 사감이셨다.
 
다른 집에 타자기 구경도 못하고 학교 수업시간에 흑백사진
으로 구경하던 시절, 아버지는 어디서 구하셨는지 컴퓨터를
구하셔서 고등학생인 나에게 기초부터 가르치셨다.
읽어도 읽어도 도무지 전언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풀리지 않는
암호 같았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 덕(?)에 세계유수의 미국계 컴퓨터회사에
입사했는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입학전엔 아버지와 고모에게 강제로 피아노를 배웠다.
손가락이 길어 어른들 눈을 현혹시켰지만, 음악성은 바닥인지라
실력은 언제나 저주의 숫자였다.
아버진 지치지 않고 플룻과 친하도록 배후조종 하셨다.
그래도 피아노 보다는 덜 부담스럽고 살가웠다.
그것도 얼마가지 않아 팔이 아프다는 핑계로 아버지 기준엔
'C' 학점 정도로 간신히 턱걸이 했다.
 
사교댄스는 어디서 배우셨는지, 나 참..
그 덕에 남의 발 밟지않고, 내 인생 열 손가락도 되지 않는
나이트 출입에서 어릿한 짓 하지 않고 스테이지를 누볐다.
 
스포츠는 나에게 가장 큰 장점인 탁월한 운동신경이 존재했다.
이 녀석 덕분에 나도 학교에서나 사회에서 대화의 주제를
선점할 수 있었다. 
대학초년시절부터 아버지 손에 이끌려 용평에서 홀인원을
맛보며, 작대기 잡고 싱글을 유지하며 살았다.
테니스는 나의 주특기 종목이었다.
좀 더 열정적으로 더 어린 시절 시작했다면 세계무대에
도전 했을 것이다.
바다낚시도 엄마 대신 내가 대타로 감수해야 할 숙제였다.
용평을 내 집 드나들 때라, 겨울엔 당연히 스키로 마무리..
수영도 이른 새벽부터 다녔다.
내가 입장하는 시간엔 강사나 코치가 출근전인 터라,
혼자 매뉴얼 물 젖을까 조바심내며, 한 장 한 장 넘기며
독학으로 수영을 마스트라면 우습지만, 물에는 뜬다.
아버지 혈통은 다들 오륜기를 가슴에 달고 있나보다.
작은 아버지도 못하는 운동이 없다.
그에 덩달아 아버진 작은아버지를 내세워 동네 저수지에서
스케이트를 가르치셨지만, 얼음과 난 친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얼음밑으로 빠져서 죽을 고비에서 가까스로 살았던 것이다.
수상스키는 북한강에서 작은 아버지가 자청하여 개인교습을 시켰다.
이후 비싼 요금과 거리상의 이유로 몇 번 가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스포츠보다 수상스키는 하루면 일반인도 가능하다.
다음, 볼링은 나에게 운동이 아니라 게임이었다.
우리나라 붐이 일어나기전, 터키, four키..에버 240 이상이었다.
이외에도 나열하기 길어져서 ...그 만...
 
아버진 여든이 가까운 연세지만, 아직도 걸어다니는 열정,
걸어다니는 에너자이저 이시다.
 
동생들이 집안을 어지럽히고, 성적이 떨어져도 맏이인 내가
연대책임으로 엉덩이에 불이 났다.
동생이 학교에서 연락없이 늦게 귀가해도 내가 대표로 회초리를 맞았다.
그래서 일까?
사 남매중 한 녀석은 도미했고, 나머지 둘은 마흔이 넘은 지금도 죽어라 잘한다.
학창시절 18년간 내가 대표로 맞고, 대학시절부터 지금껏 동생들이
내게 잘하는 것보면 대타로 회초리 맞는 것 지금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눈에 보이는 남는 장사 아닌가?
 
아버진 자식들이 가족들에게 인정받는 소통하는 사람되길 바라셨다.
국가의 아들 딸(요즘으로 말하면, 박태환, 김연아 급)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빚진 자식은 되지 않도록 훈련 시키신 게다.
 
그래서 의욕이나 자신감없는 잔소리는 잔소리일뿐이니 약간의
방목형태 가정교육을 기준 잡으셨다.
 
마지막으로 강조하신 것이 < 부모는 영원한 네 편이다 >
 
큰 부자가 아니어서 종합과세소득이나 상속세를 걱정할 정도의 재산은 없기에,
동기간에 재산싸움으로 얼룩지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한 술 밥을 대접 받으면, 내가 두 술 대접할 넉넉한 마음을 심어 주셨다.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하셔서 하늘 무서운 줄 알게 하셨고,
도덕심이 살아감에 불편이 아님 편함을 일깨워 주셨다.
아버지는 조상을 모시는 종손이지만,
우리에게 기도를 부탁할 줄 아시는 솔직한 심성의 신사이시다.
오늘도 허허로이 웃으시지만, 그 늙어감에 내 마음은 쪼그라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