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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우리 친하게 지냅시다.

1with 2018. 3. 22. 05:44



 
작가인 F.B. 마이어는 한 친구에게 말하기를 자기는 자기 집만 빼놓고 영국의 모든 집에서
환영을 받을 것이라는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사랑이 없는 그의 결혼 생활은 마음의 깊은 상처가 되었다.
그래도 마이어는 자신의 아픈 영혼으로 인해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특히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그의 아내에게 사랑과 힘을 줄 수 있게 되었다고 믿었다.
그는 아내에게 이런 글을 썼다.

<당신의 내일의 삶에 힘이 필요하다면, 그리고 그 힘이란 고통 중에 애쓰는 나의 사랑으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내 심령은 아픔과 슬픔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자유를 찾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이 뜨거운 불의 왕관을 나에게 주시오. 무서운 사랑의 대가를 내가 치르리이다.>

우리도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세상을 벗 삼으면서까지 사랑을 찾으려 한다면 심신이 힘겨워질 것이다.
오히려 전력을 다 해 옆지기 알기를 힘쓰고 사랑해 본다.
옆지기는 겉으론 아무 일 없는데 담담해 보이지만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그 사랑과 보살핌으로 채워주는 적도 있다.
그러면 혼자 노력해 얻을 수 있는 어떤 것보다 값진 보석이 되기도 한다.

사랑은 이럴 때에 두 배가 된다.

때론 내 마음, 감정을 오롯이 표현하는 것이 힘겨울 수 있지만,
곧 옆지기는  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알고 경험할 때에
비로소 옆지기는 자신을 나에게 흠뻑 내어줄 것이다.
나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에게까지 말이다.

난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한다.

하지만  상대에게 플러스되는 감정을 나눌 수 있도록 신경을 쓴다.
그래, 나쁜 감정은 어제의 창문으로 던져버리고,
지금 부족한 좋은 감정은 내일의 우물에서 미리 퍼오자는 식이다.
상대의 상처를 통해 내 진가를 전달할 수 있는 역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옆지기는 젊을 땐 몰랐는데, 한 해 두 해 지나다 보니 
회사에서 자존심에 상처가 났을 때 내 관심을 찾는 눈치였다.
 
누구나 사회생활에서 시나리오대로 진행이 안되거나 부득불 위험수위에 도달하게 되면
감정 제어장치조차 고장 날 때가 있다.
우리 부부의 경우 학번이 같다 보니 내가 먼저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그 덕에 우린 서로에게 좋은 경쟁구도를 가지고 있었다.
서로가 젊을 땐 회사 일이란 것이 스스로 해결하기도 하고 정면 승부도 하고 피하기도 하곤 했다.
그러나 세월에 열정도 조금 녹아버리고 행동강령도 느슨해지지만 자존심은 더 뾰족해지기 시작했다.
점차 옆지기의 존재에 감사하게 되고,
특별나게 얘기하지 않아도 방으로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에 힘겨움도 감지하게 되었다.
 
위험을 만나면 감정을 앞세우기는 누구나 쉽다.
옆지기가 바른 생활자인데도 사회는 그를 이상한 잣대로 키재기를 할 때면
그는 도드라진 자존심을 나에게 토로하곤 한다.
그때 옆지기의 말에 눈을 바라보며, 추임새를 넣고, 무릎도 치며, 연신 감탄사에, 맞장구 쳐준다.
편한 길로 이끌어 주고 사랑으로 안아주기도 한다. 
내 것을 내어줌으로 온전하게 감정을 나에게 맡기는 경우도 있다. 
부부간에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지독히도 싸움을 싫어하고 무서워한다.
상대와 대립이 되면 머리 회전이 멈춘다.
다른 경우엔 이성적 판단이나 감정이 정상에 가까운데,
유독 그런 상황이 되면 멍청한 상태가 된다.
그래서 내 세운 나만의 방법은 옆지기와 감정 대립이 생기면
하루 해가 가기 전에 무조건 먼저 사과를 한다.
이후 상대가 감정이 잦아들고 분위기가 좋아지면 내 생각을 자판에 풀어놓는다.
옆지기는 그제사 사건(?)의 전체를 파악하고 요점 정리하고
다음엔 이렇게 하자는 식으로 마무리한다.
그러다 보니 이젠 그런 자근 마찰도 졸업을 하게 되었다.
 
총대는 언제나 옆지기에게 준다.
맡기는 것이 만사형통이며 내 할 일이 줄어든다.
그리고 옆지기 기를 세워 내가 손해 보는 경우는 없었다.
그는 남자니까.
그리고 바른생활 자니까.
그리고 영원히 내 편이니까.
그를 가지면, 모든 것이 내 것이니까.

결론, 난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