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이미지 발췌
학원도 다니지 않는 막내 아이가 수학을 즐기며 잘하는 편이다.
담임선생님의 학교 호출로 웬일 인가하고 학교로 달려갔다.
선생님의 조언은, 아이가 영재성이 있으니 영재학교로 바꾸란다.
그러나 시험만 보면 꼭 하나씩 틀린다.
아이에게 왜 틀리는지를 물었더니, 대답이 가관이다.
선생님이 열심히 연구해서 문제를 출제하셨는데,
항상 만점을 일관하면 선생님 멘틀이 떨어지신단다.
거기까진 내자식이니 우스갯소리로 지날 수 있었다.
한 육 개월 지났나?
어느 날 수학을 두어 번의 중요한 시험에서 80점대를 받아온 것이다.
속으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학원을 안 보내서 인가?>
<매로 다스릴까?>
<아빠에게 고자질을 할까?>
<아님 관심을 끌려고 보채는 걸까?>
<살살 달래어 볼까?>
머리가 온통 뒤죽박죽이 되었다. 맥도 빠진다.
마음을 고쳐먹고 내가 전해 들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탈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가 많은 청중들 앞에서
어려운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바이올린 줄 하나가 끊어졌다.
그래도 그는 즉흥적으로 곡을 다듬어 아름다운 연주를 계속했다.
이어서 줄 두 개가 더 끊어졌다.
그래도 그는 단 하나의 줄로 연주를 마쳤다.
박수갈채가 서서히 끝나자 파가니니는 지휘자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앙코르 연주를 시작하였다.
바이올린을 든 그는 청중들에게 미소를 보내며
<이번 곡명은 파가니니와 한 개의 줄입니다!>라고 외쳤다.
바이올린을 턱에 댄 그는 다시 한 줄로 연주를 했다.
찰스 스윈돌은 이 일을 생각하면서
<나는 나이가 들면서 인생의 10퍼센트는 우리에게 생긴 사건들이 차지하고,
나머지 90퍼센트는 그 사건들에 대해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가 차지한다는
사실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고 썼다.
너의 인생의 작은 역경 때문에 좌절하고 무력하게 되어 있지 않니?
너에게 남겨진 그 <한 줄>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면 어떨까?
아이에게 질문으로 마무리하였다.
그리곤 다음 시험 때까지 수학에 대한 언급은 의도적으로 않았다.
막내는 부모의 기도 때문이었을까?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그 당시만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막내가 그 일로 인해 스스로에 대해 믿음이 상실될까,
극복하는 과정이 묻혀 버릴까 짧은 걱정을 했었다.
나의 기우이길 기도는 아직도 끝나지 않는다.
자식 가진 부모의 마음 이곳에 내려놓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