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이를 만났다.
대학 동기지만,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는데
그녀가 일산 가까이 살다 보니 가끔 만난다.
<바보 같으니, 그런 건 누가 됐든 상관없잖아. 선한 역인지 악한 역인지 묻고 있는 거라고.
좌파들이 쓰는 말이잖아. 틀림없이 그거 나쁜 쪽인 거지?>
그녀는 선악 두 종류의 색깔 나누기를 매우 선호했다.
난 잠이 확 달아나는 듯했다.
친구의 입에서 기관총처럼 쏟아져 나오는,
거의 그녀와 상관없는 단어들과 사람 이름을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몰라 고민했지만, 이내 알았다.
분명 싸구려 연애편지에 쓸 모양인 것을 눈치챘다.
그녀는 등단한 작가다.
무릇, 좌파 같은 건 실수로라도 들여다볼 것 같지 않은 인종인 데다,
그런 주제에 왜 그런지 엘리트 의식은 동경해 마지않고,
좌파에 호감은 갖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1년 내내 일요판 신문 한 부조차
사 읽지 않는 싸구려 지식인의 표본과도 같은 인종이다.
우리 친구 중 지성인 이라며 이렇게 답답한 사람들도 있다.